[장內우주 ― 마이크로 코스모스] 장이 기억하는 문명 ― porphyran과 서양인의 장내 미생물

장이 기억하는 문명 ― porphyran과 서양인의 장내 미생물 “서양인의 98%는 porphyran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문장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을 넘어, 인간과 음식, 장내 생태계, 그리고 문화적 진화의 관계를 통찰하게 한다. 미생물학, 유전학, 인류학, 식문화사가 교차하는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들이…

장이 기억하는 문명 ― porphyran과 서양인의 장내 미생물

“서양인의 98%는 porphyran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문장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을 넘어, 인간과 음식, 장내 생태계, 그리고 문화적 진화의 관계를 통찰하게 한다. 미생물학, 유전학, 인류학, 식문화사가 교차하는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1. Porphyran이란 무엇인가 ― 해조류의 섬유질, 문명의 유산

Porphyran은 주로 김, 파래 같은 붉은 해조류에 포함된 황산화 다당류이다. 인간의 체내 소화 효소로는 이 물질을 분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porphyran은 ‘미생물의 도움 없이는 영양이 될 수 없는 성분’이다.

그러나 일본인, 그리고 일부 해조류 섭취가 일상적인 동아시아인은 이를 소화할 수 있는 특정 장내 미생물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Bacteroides plebeius라는 균이다. 이 균은 해양 박테리아로부터 수평 유전자 전이(horizontal gene transfer)를 통해 porphyran 분해 효소 유전자(POR 유전자)를 획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전자는 단지 해조류를 소화하는 데 쓰이는 단백질을 코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유전자 교류의 생생한 증거다.


2. 서양인의 장에는 그 미생물이 없다 ― 유전자의 부재, 기억의 단절

서양인의 장내 미생물군은 porphyran 분해 유전자를 보유한 세균의 존재 비율이 거의 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약 98% 이상의 서양인은 이 물질을 소화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김을 먹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해조류를 일상적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해당 물질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분해하는 세균이 장내에 정착할 이유도 없고, 유전자 전이가 일어날 환경도 형성되지 않는다.

이것은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다. 인간은 먹는 음식에 따라, 장내 생태계를 구축하며, 그 생태계는 다시 인간의 생리적 특성과 면역, 대사, 신경계를 조절하는 상호작용의 중심이 된다.


3. 음식은 문화이며, 문화는 생물학이다

해조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장내 생태계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해, 문화가 생물학을 만든다. 어떤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어떤 음식을 먹어왔는지가, 그 민족의 장내 미생물을 형성하며, 이는 개개인의 생리적 반응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일본인의 장내 미생물군은 김과 같은 해조류를 자주 섭취한 결과로, 해당 물질을 소화할 수 있는 균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 균이 외부 해양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수평 전이로 획득했다. 이건 단순한 생물학이 아니다. 삶의 양식, 환경, 섭식 행동이 유전자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


4. 수평 유전자 전이 ― 장내 미생물의 진화적 창의성

이 사례의 핵심은 수직적 유전(부모-자식의 유전)이 아니라, 수평적 유전(Horizontal Gene Transfer)이라는 진화적 메커니즘이다. 일반적으로 박테리아는 필요에 따라 유전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생태계 내 기능적 다양성이 급격히 확장된다.

이러한 현상이 인간의 장내에서도 관찰된다는 사실은, 인간이 단순히 ‘미생물의 숙주’가 아니라, 미생물과 함께 진화하는 하나의 ‘공생 생명체(superorganism)’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해 온 음식은 우리 장 속 미생물의 유전자 풀을 바꾸었고, 그 유전자 풀은 우리의 대사, 면역, 정서까지 영향을 미친다.


5. 문명의 흔적은 장 속에 있다

인간은 늘 문명의 흔적을 돌, 언어, 문자, 유물에서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더 오래된 문명의 흔적을 품고 있다. 바로 장 속에 살아가는 수십 조 마리의 미생물,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유전자 속에.

porphyran 분해 유전자의 유무는 단순히 음식의 적응 능력을 넘어서, 인류 문명의 식사법이 생물학을 어떻게 길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미생물은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기억하고, 그 기억은 유전자의 형태로 보존된다.


6. 결론 ― 장내 생태계는 하나의 문화다

“서양인의 98%는 porphyran을 분해하지 못한다”는 이 간단한 문장은 다음과 같은 깊은 통찰을 던진다:

  • 문화는 유전자를 바꾼다.
  • 음식은 기억이고, 기억은 생물학이다.
  • 우리는 문명을 먹는다.

서양인이 김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입맛 때문이 아니라, 기억의 부재다. 미생물은 기억한다. 인간의 장 속에는, 지난 수천 년간 무엇을 먹어왔는지에 대한 분자적 고고학이 존재한다. 이 진실은 우리가 장을 ‘두 번째 뇌’라고 부르는 이유를 넘어서, ‘두 번째 역사관’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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