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note

오래 살 ‘가치’가 있는 삶을 묻기까지

“Live long and prosper.”

스타트렉의 스팍이 건네는 이 유명한 인사말은 우리에게 오래 사는 것 자체보다, 어떤 조건에서의 삶이 지속될 가치가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HWLL(Health·Wealth·Live Long)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 저의 사고 아카이브입니다.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서 얻은 단서

삶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2016년, 새 생명을 맞이하던 축복의 현장은 출산 과정에서의 무통주사 마취 처치 부주의로 인한 척수액 누수(CSF Leak)라는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예기치 못한 물리적 타격은 제 생명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특히 저를 절망케 했던 것은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통증의 실체였습니다. 의료진의 부주의로 시작된 고통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의료 기기나 검사 결과지 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만이 온몸으로 감각할 뿐 타인에게는 결코 가닿지 않는 유령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낮은 뇌압이 몰고 온 극심한 통증과 서서히 진행되는 신경쇠약, 그리고 2019년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며 저는 입안에서만 맴도는 단어들을 붙잡은 채 무너져 내리는 언어 능력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증명할 수 없기에 더 고립되었던 그 상실의 끝에서, 저는 단순하지만 절박한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 무엇이 먼저 무너졌는가?
  • 나는 어떤 구조를 잃었는가?
  • 의식이 먼저인가, 신경계가 먼저인가?

이 과정에서 회복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회복은 단순히 증상을 제거하는 ‘치료’가 아니라, 흐트러진 시스템을 다시 세우는 ‘정렬(Alignment)’의 과정이어야 했습니다.


세포의 구름다리와 장내 생태계: 연결의 과학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지극히 상식적인 권유조차 저에게는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에너지도, 무언가를 시도할 의지도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 무력감이 단순히 마음의 게으름이 아닌, 제 몸 안의 ‘에너지 화폐’ 시스템이 통째로 파산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직감하며 그 근원을 파고들었습니다.

저의 탐구는 그렇게 신경계를 넘어 생명 시스템 전반의 경제망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우리 몸의 기축 통화인 ATP를 발행하는 미토콘드리아가 멈춰버린 자리, 신경세포가 에너지를 잃고 비명을 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이 에너지 공장의 노후화를 막고 품질을 관리하는 유롤리틴 A(Urolithin A)의 기전을 추적하자, 질문은 결국 그 화폐를 주조하고 유효한 대사산물을 만들어내는 원천적인 뿌리, 즉 장내 미생물(Microbiome)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로 향했습니다.

특히 이민자라는 환경적 변수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Dysbiosis)의 결정적 원인이었습니다. 낯선 땅의 물과 음식, 환경적 스트레스가 제 몸의 기저를 흔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2023년, 저는 점막의 수문장인 아커만시아(Akkermansia)를 연구하며, 척수액 누수라는 물리적 재난과 팬데믹을 거치며 심화 된 각종 전신 쇠약의 증상을 극복하는 힘이 결국 장내 생태계의 정렬 상태와 직결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구조가 바뀌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회복은 단일한 해법이 아니었습니다. 장내 미생물, 에너지 대사, 세포 정리 과정(Mitophagy) 등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상호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조정들이 누적되자 불안정했던 시스템은 안정을 찾았고, 인지와 감각의 흐름도 정돈되었습니다.

제 몸이라는 시스템은 정교했습니다. 질문은 방향을 만들고, 루틴은 구조를 만들며, 그 구조가 삶의 지속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저는 몸소 체험하며 배웠습니다.


그래서 HWLL이 존재합니다

HWLL은 정답을 제시하거나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려는 공간이 아닙니다. 이곳은 다음을 기록하는 사고의 궤적입니다.

  • 생명과 건강을 하나의 통합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관점
  • 선택과 환경이 장기적인 삶의 궤적을 형성하는 방식
  • 구조를 바꿈으로써 얻어지는 삶의 질적 변화

10년이 지난 지금 2026년, 저는 모든 후유증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단순히 건강검진의 숫자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매일 제가 먹는 것과 습관, 수면의 질, 그리고 마음을 스치는 생각들까지 세심하게 관리합니다. 특히 매주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하며 제 몸의 중심을 잡는 행위는, 제 시스템의 정렬 상태를 직관적으로 체크하는 가장 정교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습니다.

이곳에 남기는 저의 궤적과 기록들이, 각자의 이유로 삶의 구조가 흔들린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다시 정렬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정밀한 참고 좌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래 사는 것을 넘어, 무엇이 오래 살 가치가 있는 삶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저는 오늘도 관찰하고, 연결하고,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