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탐색의 철학] 읽기의 끝에는 쓰기가 있다 ― 사유의 과잉과 글쓰기의 숙명에 대하여

읽기의 끝에는 쓰기가 있다 ― 사유의 과잉과 글쓰기의 숙명에 대하여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남의 정신을 내 안에 들이는 일이다. 활자 하나하나를 통해 수많은 타인의 사유가 흘러들어온다. 그렇게 쌓인 생각들은 내면의 어딘가에서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의미를 요구한다. 많이 읽은 사람은 결국, 자신의 머릿속에서 낯선 군중의 웅성거림을 듣게 된다. 그것은 타인의 언어로…

읽기의 끝에는 쓰기가 있다

― 사유의 과잉과 글쓰기의 숙명에 대하여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남의 정신을 내 안에 들이는 일이다. 활자 하나하나를 통해 수많은 타인의 사유가 흘러들어온다. 그렇게 쌓인 생각들은 내면의 어딘가에서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의미를 요구한다. 많이 읽은 사람은 결국, 자신의 머릿속에서 낯선 군중의 웅성거림을 듣게 된다. 그것은 타인의 언어로 이루어진 내면의 혼잡이다.

보르헤스는 한때 자신을 “읽은 책들의 총합”이라 불렀다. 그는 무한한 도서관 속을 헤매며, 인간의 정신이 지식의 미로에 갇히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읽기는 끝없는 복제이자, 세계의 무한한 반향이었다. 그러나 그 미로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쓰기’였다. 쓰지 않는 독서는 결국 끝이 없는 독서에 불과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삼켜온 세계를 되돌려놓았다.

읽기로 들어온 세계를 언어로 토해내지 않으면, 인간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속 사서처럼 — 무한히 읽으며 무한히 길을 잃는다.

카프카는 달랐다. 그는 글을 써야만 살 수 있었다. “쓰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다”는 그의 고백은 단순한 예술가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는 일상의 사무원으로 살아가며, 밤마다 쓰기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었다. 읽기와 관찰로 채워진 현실이 그의 내면을 짓눌렀고, 글쓰기는 그 압박을 견디기 위한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그에게 글쓰기는 선택이 아니라 정신의 호흡이었다.

읽기의 본질은 수용이고, 쓰기의 본질은 배출이다. 수용만 하고 배출하지 않는 존재는 결국 막히고 썩는다. 생각도 그렇다. 우리는 수많은 문장과 사고를 들이마시지만, 그것들을 언어로 정리하지 않으면 혼란이 된다. 글쓰기는 그 혼란을 질서로 바꾸는 행위다.

읽기의 끝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정신을 구조하는 일이다.

물론, 모든 이가 글로써 자신을 구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노래로, 어떤 이는 대화로, 또 어떤 이는 침묵으로 자신을 정리한다. 중요한 건 표현의 형태가 아니라, 표현의 존재다. 읽기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인 사람은, 반드시 그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내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면의 세계는 압축된 사유로 팽창하다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가 아니라,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인간이 선택한 사유의 형식이다.

많이 읽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쓴다.

그것이 문장이든, 고백이든, 혹은 한 줄의 낙서이든 간에.

읽기의 끝에는 언제나 쓰기가 있다.

그것이 생각하며 살아남는 자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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