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보다는, 자신의 인코딩을 발견하는 것이 100만 배 더 중요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잘못된 질문 앞에 서 있었다. “나에게 재능이 있는가.” “나는 저 사람보다 뛰어난가.” 학교도, 시장도, 심지어 스스로를 향한 내면의 목소리까지 늘 이 질문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짐 콜린스는 이 질문 자체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라고 말한다. 정작 삶의 결을 가르는 것은 재능의 유무가 아니라, 자신의 인코딩을 발견했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인코딩이란, 한 사람 안에 자리 잡아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어느 날 밖에서 주입된 기술이 아니라, 삶의 경험 속에서 드러나기를 기다리며 이미 그 사람 안에 놓여 있는 고유한 구조다. 살아오는 동안 쌓아 올린 지적 경험과 정서적 경험이 그 사람만의 방식으로 조합된 결과—그것이 인코딩이다. 그러니 인코딩은 이력서에 적히는 스펙의 목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과 반응하는 고유한 문법에 가깝다.
바버라 매클린톡을 떠올려 본다. 한번 연구에 몰입하면 자신의 이름조차 잊을 만큼 깊이 빠져들었던 사람. 우리는 흔히 그런 몰입을 초인적인 의지의 산물로 오해하지만, 콜린스의 시선은 다르다. 그녀는 애초에 그렇게 몰입하도록 인코딩된 사람이었다. 몰입은 그녀가 억지로 짜낸 미덕이 아니라, 이미 그녀 안에서 작동하고 있던 구조가 알맞은 대상을 만나 켜진 것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인코딩을 ‘천재성’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천재성은 본질적으로 비교의 언어다. 누구보다 더 높은가, 더 빠른가, 더 예외적인가를 묻는다. 그러나 인코딩은 비교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정렬(alignment)의 언어다. 그러므로 진짜 물어야 할 것은 “이 사람이 천재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인코딩 조합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닌가”이다. 세상이 천재라 부르는 사람도 자신의 인코딩을 거스르며 살면 초라해질 수 있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자신의 조합에 충실하면 놀랍도록 충만한 삶을 살아낸다.
콜린스가 오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한평생을 다 써도 채 발견하지 못할 만큼 방대하고 놀라운 인코딩의 조합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재능은 희소하다’는 오래된 전제를 뒤집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코딩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 속에서 반드시 자기만의 인코딩을 지니고 있다. 결핍이 아니라 미발견이 진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코딩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밖에서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이 전환은 자기 계발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놓는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무언가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믿지만, 콜린스의 관점에서 성장이란 자신을 조각하는 일이라기보다 이미 그 안에 묻혀 있던 것을 캐내는 일에 가깝다. 없는 것을 세우는 노동이 아니라, 있는 것에 귀 기울이는 발굴이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렇게 남는다. “삶의 여정 속에서 나는 어떤 인코딩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인코딩을 믿고, 그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가?” 두 번째 질문에 방점이 있다. 발견만으로는 부족하다. 발견한 인코딩을 신뢰하지 못하면, 그것은 서랍 속에 넣어둔 채 끝내 켜지지 않은 스위치로 남는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막연한 자기 긍정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에 삶의 무게를 실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콜린스의 연구가 마지막으로 일러주는 진실은 이것이다. 위대한 삶을 살아낸 이들은 재능이나 천재성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살아온 시간 속에서 축적한 고유성—나만의 조합이 무엇인지를 끝내 찾아내고, 그것을 믿고 신뢰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예외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인 것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재능을 부러워하며 보낸 시간보다, 자신의 인코딩을 발견하고 그것을 신뢰하며 산 하루가 100만 배 더 값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짐 콜린스,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읽고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