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나] 태어난 괴물인가, 만들어진 악마인가: <위키드>가 던지는 질문

태어난 괴물인가, 만들어진 악마인가: <위키드>가 던지는 질문 우리는 흔히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명확한 이분법으로 나눈다. 동화 속 주인공은 언제나 정의롭고, 그를 방해하는 마녀는 태생부터 사악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는 이러한 확신에 균열을 내며 묻는다. “과연 누군가를 ‘사악하다’고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소설의 대답은 차갑고도 현실적이다.…

태어난 괴물인가, 만들어진 악마인가: <위키드>가 던지는 질문

우리는 흔히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명확한 이분법으로 나눈다. 동화 속 주인공은 언제나 정의롭고, 그를 방해하는 마녀는 태생부터 사악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는 이러한 확신에 균열을 내며 묻는다. “과연 누군가를 ‘사악하다’고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소설의 대답은 차갑고도 현실적이다. 악은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과 권력의 선동, 그리고 대중의 방관이 빚어낸 ‘비극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1. 차별이 잉태한 소외: 초록색 피부의 무게

주인공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저주받은 아이 취급을 받는다. 그녀의 ‘사악함’에 대한 논의는 그녀의 행동이 아니라, 외형적 ‘다름’에서 시작된다. 사회는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괴물’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격리하는 편을 택한다. 엘파바가 겪는 소외는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주류 사회가 소수자를 타자화하고 배척하는 폭력성을 상징한다. 결국 그녀의 냉소와 분노는 태생적인 악함이 아니라, 자신을 거부한 세상을 향한 정당한 방어기제였다.

2. 권력의 도구가 된 ‘악’의 프레임

소설 속 오즈의 마법사는 무능한 권력자다. 그는 자신의 통치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공의 적을 필요로 한다. 그는 지성을 가진 ‘말하는 동물’들을 탄압하고, 이에 저항하는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로 둔갑시킨다. 여기서 ‘악’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로 전락한다. 진실을 외치던 투사가 권력의 선전(Propaganda)에 의해 악당이 되는 과정은, 우리가 믿는 역사와 정의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 방관이라는 이름의 공범

엘파바가 진정한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에는 대중의 침묵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마법사의 거짓에 동조하거나 침묵한다. 악의 승리는 강력한 악당 한 명의 힘이 아니라, 평범한 다수의 무관심과 비겁함에서 비롯된다. 엘파바의 고립은 그녀를 점점 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고, 사회는 그 결과를 보며 다시금 그녀를 ‘악’이라 손가락질한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잔인한 굴레다.

결론: 거울을 비추는 소설

결국 <위키드>가 내놓는 대답은 명확하다. 사악함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절대적인 본성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이해하길 거부하는 편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권력의 탐욕, 그리고 불의를 외면하는 우리의 비겁함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가면이다.

우리가 ‘서쪽의 못된 마녀’라고 불렀던 엘파바는, 사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모순의 희생자였다. 소설은 엘파바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지금 손가락질하는 그 ‘악당’은 정말 악한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엘파바인가. 이 작품은 선과 악의 경계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타인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 내면의 편견을 마주하라는 뼈아픈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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