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건축가들] 식민지의 기억과 시민권의 정치 ― 영국의 인도인과 일본의 재일조선인 후손 비교

식민지의 기억과 시민권의 정치 ― 영국의 인도인과 일본의 재일조선인 후손 비교 1. 역사적 기원: ‘어떻게 이주하게 되었는가’ 영국 내 인도인의 이주는 대부분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본국과의 관계를 유지한 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식민지 시절 영국은 인도를 제국 내 가장 중요한 경제·정치적 거점으로 삼았고, 이로 인해 인도계 엘리트들이 영국 내에서 교육과…

식민지의 기억과 시민권의 정치

― 영국의 인도인과 일본의 재일조선인 후손 비교


1. 역사적 기원: ‘어떻게 이주하게 되었는가’

영국 내 인도인의 이주는 대부분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본국과의 관계를 유지한 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식민지 시절 영국은 인도를 제국 내 가장 중요한 경제·정치적 거점으로 삼았고, 이로 인해 인도계 엘리트들이 영국 내에서 교육과 취업 기회를 누릴 수 있는 통로가 형성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는 동아프리카에서 추방당한 인도계 커뮤니티(케냐·우간다 출신)가 영국에 정착하며 인도계 디아스포라가 확대되었다.

반면, 일본 내 조선인의 대다수는 1910~1945년 식민지 시기에 강제 동원되거나, 생존을 위한 경제적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본인의 선택이 아닌 제국주의적 착취의 일부로 일본 내에 유입되었으며, 패전 이후에도 귀환하지 못한 채 일본 사회 내 ‘비국민’으로 고립된 생활을 이어갔다. 그 후손들이 오늘날 재일조선인 혹은 재일한국인으로 분류된다.


2. 법적 지위와 시민권 구조

영국은 과거 제국의 식민지였던 국가의 국민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시민권 정책을 적용해 왔다. 인도계 영국인들은 영국 연방 시민이라는 지위를 통해 비교적 용이하게 영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고, 그 자녀 세대는 자연스럽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받았다. 리시 수낙 총리와 같은 인물의 등장은 이러한 시민권 구조의 산물이다.

일본의 경우, 재일조선인에게 오랜 기간 동안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특별영주자’라는 비시민적 법적 지위에 머물렀다. 이 제도는 실질적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이분화하는 방식이며, 재일조선인들은 선거권, 공직 진출, 공공기관 채용 등에서 차별을 받아왔다. 현재 일부는 귀화를 통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시민권 밖에 존재한다.


3. 사회 통합과 차별 경험

영국의 인도계 커뮤니티는 높은 교육열과 경제적 활동성을 바탕으로 중산층 이상으로 빠르게 진입하였으며, 의료, 법률, 금융, 기술 등 전문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런던, 버밍엄, 레스터 등지에는 문화적 자율성이 보장된 지역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으며, 다문화주의 정책 하에서 인도 전통문화(디왈리, 사리, 힌두 사원 등)가 공공영역에서 표현되고 존중받고 있다.

반면, 일본 사회는 단일민족주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재일조선인을 포함한 외국계 주민에 대한 문화적 통합이 미진하다. 재일조선인들은 오랫동안 취업·교육·주거 등의 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하였으며, 특히 조선학교에 대한 비인정 정책, 한복 착용에 대한 사회적 불편함, 한국 이름 사용에 따른 불이익 등은 그들의 정체성 표현을 억제해 왔다. 혐한 시위와 같은 증오 발언도 꾸준히 존재한다.


4. 정체성의 경계성과 내부 균열

영국 인도계는 복수 정체성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이들은 영국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면서도, 종교(힌두교, 시크교), 언어(힌디어, 구자라티어), 관습(볼리우드, 인도 음식 등)을 적극적으로 계승하며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다문화주의적 환경과 법적 지위의 안정성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재일조선인의 경우, 내부적으로도 남한계, 북한계, 무국적자, 귀화자 등으로 분열되어 있다. 조선학교 출신과 일본학교 출신 간의 경험 차이, 남북한의 정치적 갈등이 그대로 이식된 공동체 구조, 귀화 여부에 따른 사회적 인식 차이 등으로 인해 커뮤니티 내부의 정체성도 균질하지 않다. 정체성은 사회적 억압과 내부 갈등 속에서 균열된 상태로 존재한다.


5. 철학적 함의: 제국의 잔재는 어디에 남는가

호미 바바는 식민지 후손이 존재하는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고국도 아니고, 완전한 타국도 아닌 중간지대이며, 그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인도계는 이러한 혼종적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권리를 재창조하며 시민권을 정치적 실천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재일조선인의 경우 그 ‘제3의 공간’은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여전히 법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다. 이는 식민 지배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폭력임을 보여준다.


결론

식민지의 후손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는 단지 이주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 정체성과 인권, 통합 정책, 다문화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거울이다. 영국의 인도계가 정치와 경제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반면, 일본의 재일조선인은 여전히 주변부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제국주의가 남긴 법적·문화적 잔재가 국가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청산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적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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