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의 건축가] 법의 지평에서 인공지능 에이전시를 해석하다: 전통적 에이전시 개념과의 충돌과 공존

법의 지평에서 인공지능 에이전시를 해석하다: 전통적 에이전시 개념과의 충돌과 공존 현대 사회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AI 에이전트가 점차 우리의 일상과 경제 활동에 깊숙이 통합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자율적으로 학습하고, 의사결정하며, 심지어 계약까지 체결하는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미국 법의 전통적인 ‘에이전시(Agency)’ 개념에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본 에세이는 미국…

법의 지평에서 인공지능 에이전시를 해석하다: 전통적 에이전시 개념과의 충돌과 공존

현대 사회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AI 에이전트가 점차 우리의 일상과 경제 활동에 깊숙이 통합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자율적으로 학습하고, 의사결정하며, 심지어 계약까지 체결하는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미국 법의 전통적인 ‘에이전시(Agency)’ 개념에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본 에세이는 미국 법의 ‘에이전시’ 개념을 AI 에이전트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공존의 양상을 분석하고, 향후 법적 프레임워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미국 법에서 ‘에이전시’는 본인(principal)이 대리인(agent)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권한을 부여하고, 대리인의 행동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며, 대리인이 본인의 지시에 동의하는 법적 관계를 의미한다. 이 관계의 핵심은 본인의 ‘통제’와 대리인의 ‘충실 의무’, 그리고 본인이 대리인의 행동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는 ‘대리 책임(vicarious liability)’의 원칙에 있다. 고용 관계, 부동산 중개, 법률 서비스 등 전통적인 에이전시 관계는 이러한 명확한 개념 위에서 작동해 왔다.

그러나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이러한 전통적 개념에 균열을 일으킨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자율성은 ‘통제’라는 에이전시의 핵심 요소를 모호하게 만든다. 개발자나 사용자(본인)가 AI 에이전트의 모든 행동을 예측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문제는 본인이 AI 에이전트의 행위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AI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오류를 일으키거나, 본인이 부여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행동을 했을 때, 기존의 대리 책임 원칙을 기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더욱이 AI 에이전트는 인간과 같은 ‘의도(intent)’나 ‘정신 상태(mens rea)’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전통적인 법률, 특히 형사법이나 불법 행위법에서는 행위자의 의도나 과실 여부가 책임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AI 에이전트가 저지른 해로운 행위에 대해 ‘고의’나 ‘과실’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법적 주체성 논의로 이어진다. 현재로서는 AI 에이전트 자체를 법적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AI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결국 이를 개발, 배포, 또는 사용하는 인간이나 법인에게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적 해석의 방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에이전트의 행동을 기존의 법적 프레임워크 안에 통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첫째, 제조물 책임(Product Liability)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AI 에이전트가 제품으로서 결함이 있어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개발자나 판매자는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는 AI의 기능적 오류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둘째, 과실 책임(Negligence)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AI 에이전트를 설계, 테스트, 배포, 또는 감독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했다면, 해당 주체에게 과실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는 AI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적절한 안전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한다.

또한, AI 에이전트의 자율성이 증대함에 따라, 전통적인 ‘에이전시’ 개념을 확장하여 적용하려는 논의도 활발하다. 본인이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배포하는 행위 자체가 AI의 잠재적 행동에 대한 ‘묵시적 합의’이자 ‘통제’의 한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나아가 AI 에이전트가 외형적으로 본인을 대리하는 것처럼 보여 제3자가 이를 합리적으로 신뢰했다면, ‘외견상 권한(apparent authority)’의 법리를 적용하여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론적으로, AI 에이전시와 전통적 ‘에이전시’ 개념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이는 동시에 법적 사고의 진화를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AI 에이전트의 자율성과 비인간적 특성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법적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이는 기존 법률의 유연한 적용과 함께, AI의 책임과 윤리, 데이터 프라이버시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AI 기술이 사회의 근간을 변화시키는 만큼, 법률 시스템 또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진화하며, 기술 발전과 사회적 정의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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