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심장에서 부활한 사유: 피터 틸과 ‘이미타티오’
실리콘밸리의 가장 발칙한 투자자로 불리는 피터 틸(Peter Thiel)의 이력 뒤에는 늘 한 명의 이름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바로 20세기 마지막 교양이라 불리는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다. 틸은 단순히 지라르의 애독자를 넘어, 그의 사상을 현대 사회의 운영 체제로 이식하려는 가장 적극적인 설계자다. 그 설계의 중심에 바로 틸 재단이 운영하는 연구소, ‘이미타티오(Imitatio)’가 있다.
이미타티오의 존재는 자본주의의 최전선인 실리콘밸리가 사실은 가장 원시적인 인류의 본능 위에 세워져 있음을 방증한다. 2007년 틸이 설립한 이 연구소는 지라르의 ‘모방 이론(Mimetic Theory)’을 고답적인 상아탑에서 끄집어내어 현대 사회의 갈등과 욕망을 해석하는 날카로운 칼로 갈아냈다. 이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인간은 스스로 욕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피터 틸은 이미타티오를 통해 지라르의 통찰이 어떻게 비즈니스와 정치를 지배하는지 증명하려 한다.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가 가능했던 이유도, SNS가 타인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욕망을 복제하는 거대한 ‘모방의 용광로’가 될 것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미타티오는 인간이 서로를 모방하다 결국 ‘모든 이의 모든 이에 대한 투쟁’에 빠질 때, 사회가 어떻게 희생양(Scapegoat)을 찾아 평화를 유지하려 하는지 그 잔인한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이 연구소의 활동은 학술적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모방 이론을 인공지능, 국제 정치, 경제적 거품 현상에 대입하며 인류가 직면한 실존적 위기를 분석한다. 틸에게 이미타티오는 단순한 후원 사업이 아니라, 지라르가 예견한 ‘종말론적 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적 방어 기제인 셈이다.
결국 이미타티오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욕망은 과연 당신의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피터 틸이 르네 지라르를 위해 세운 이 사상의 성소는,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인류는 영원히 모방과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자본의 정점에서 인류학의 정수를 캐내는 이 기묘한 연구소는,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지를 가장 냉철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