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호 위에 기대어 나를 증명하려 했다
― 의미의 상징, 상징의 표식을 향한 욕망
삶의 어떤 시기에는 마음이 먼저 부서진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결핍,
어딘가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는 내면의 균열.
그 시기, 나는 유난히 명품을 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품이 가진 ‘의미의 상징’,
그 상징을 담은 ‘표식’을 갈망했다.
1. 기호 위에 누운 자존
나는 명품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원했다.
무너진 자존은 조용히 기호 위에 몸을 눕혔고,
존재의 흔적은 가격표보다 선명하게
브랜드라는 언어 안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그 욕망은 사치가 아니었다.
내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었다.
그 시기, 나는 실체보다 더 선명한 기호를 찾고 있었다.
사라지고 싶지 않았고, 무너졌음을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로고 하나에, 패턴 하나에, 포장된 상징 하나에
나를 대입해보는 연습을 반복했다.
2. ‘갖는다’는 행위로 존재를 확인할 때
자아가 흔들릴수록 인간은 실존을 소유로 대체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불가능해지면,
무엇을 가졌는가로 나를 증명하고 싶어진다.
그 욕망은 때로 아름답고, 때로 절박하며,
대부분은 살아 있으려는 마지막 파동이다.
나의 파동은 고가의 기호에 반응했다.
나는 그것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기대어 내가 여전히 기능하고 있음을 스스로 확신하려 했다.
3. 의미의 상징의 표식을 찾는 행위
나는 그저 물건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의미의 상징의 표식을 찾는 행위’는
존재가 흔들릴 때 본능처럼 발현되는 구조다.
의미는 보이지 않고, 상징은 언어 너머에 있으며,
표식만이 현실 속에서 즉각적으로 손에 잡힌다.
명품은 그 표식의 정제된 형태였다.
그것은 말 대신 존재를 선언했고,
내 안의 침묵을 덮어주는 방패가 되어주었다.
4. 무너짐의 언어, 회복의 구조
지금 돌아보면,
나는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상징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삶이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식의 마지막 언어이자 회복의 구조로서의 ‘표식 찾기’.
그 선택은 허영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내 안의 언어를 회복하려는
깊고 절박한 자기 구원의 방식이었다.
마무리 질문
당신은 무엇을 통해 지금의 나를 증명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가장 원했던 건, 정말 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였습니까?
기호를 벗고 난 후, 그 안에 남는 존재는 어떤 모습입니까?
삶은 결국, ‘무엇을 갖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의 언어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나로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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