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시대, 단어의 무게를 묻는다〉
HWLL 철학 시리즈 | 감정과 언어의 문명적 균형에 대하여
질문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쉽게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은 아닐까?
그 말의 무게는 여전히,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의 눈빛과, 매일 밤 공포에 잠들던 아이의 심장에 걸맞은가?
관찰
트라우마(trauma)는 본래, 인간의 심리적 복구 능력을 압도하는 수준의 충격을 뜻한다. 그것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불편함과는 다른, 생존의 문턱에서 경험되는 파열이다. 그러나 지금 이 단어는, 아이가 친구에게 거절당했을 때, 부모의 목소리가 조금 높았을 때조차 일상적으로 호출된다. 그리고 그 부름은, 종종 부모의 불안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어적 말하기에 불과하다.
불편함은 곧 트라우마가 아니다.
감정은 곧 진실이 아니다.
고통의 언어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절도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곧 사회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부풀릴수록, 진짜 고통은 그만큼 사라지게 된다.
Ques의 속삭임
“그대가 보호하고 싶은 것은 아이의 감정인가, 아니면 그대 자신의 죄책감인가?”
현대의 부모는 위대한 심리적 각성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때로는 감정을 ‘해석’하기보다 ‘회피’하는 데 언어를 사용한다.
그 회피는 고급스러운 말들로 치장되지만, 실상은 아이의 ‘내적 근육’을 단련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회피는 보호가 아니다.
부드러움만으로는 아이의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무균실이 아니라, 내부의 면역체계다.
철학적 정리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불편함을 견디는 기술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해석하고 구조화할 수 있는 내적 언어 체계를 길러주는 것이다.
트라우마란 단어는, 생명 자체의 균형이 깨졌을 때 쓰는 말이다.
그 말의 무게를 지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짜 고통을 인식하고 책임지는 방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HWLL은 말한다.
“감정은 해석되어야 하고, 언어는 절도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진실에 닿을 수 있다.
건강한 언어는 건강한 정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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